친환경인증이 취소돼 유기 출하가 불가능한 유기 단호박
서울--(뉴스와이어)--실제 농사를 짓고 있음에도 농업인으로 등록하지 못한 채 제도 밖으로 밀려난 ‘유령농부’들이 있다. 바로 임차농이다. 최근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해 경영체 등록을 하지 못하는 임차농 사례가 확산되면서 7월 1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임차농 보호를 위한 유령농부 국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기자회견은 제22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더불어민주당 간사 이원택 의원을 비롯해 문대림, 임미애, 임호선 의원(더불어민주당)과 김선교 의원(국민의힘)이 공동 주최하고, 9개 생산자·소비자단체(농정전환실천네트워크, 두레생협연합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먹거리연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한살림생산자연합회,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한국친환경농업협회, 환경농업단체연합회)가 주관했다. 무더위 속에서도 임차농 보호를 촉구하는 소비자와 생산자 50여 명이 참석해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 현장에는 유기농 인증이 취소된 단호박이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주최 측은 농부의 땀과 정성이 담긴 이 유기 재배 단호박이 바로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인 ‘유령농부’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 이재명 대통령이 ‘친환경농업 2배 확대’를 약속한 만큼 생산 기반인 친환경 농지가 2배 이상 늘어나도록 농업정책을 전면 전환하고 안정적인 농지 이용 체계를 구축할 것을 촉구했다.
참여 단체들은 △실경작 임차농 보호 대책의 즉각 마련 △ 친환경농지 장기임차를 위한 ‘농지법’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 △친환경농업 확대를 위한 농지이용 체계 안정화 등 실효성 있는 방안을 요구했다.
이들은 7월 11일(금)부터 22일(화)까지 국회와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며, 23일(수)에는 농식품부 앞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요구할 예정이다.
‘농지법’·‘조세특례제한법’ 조속한 통과 필요… 친환경 장기 임대차 활성화 취지
이번 기자회견에는 친환경 임차농 보호와 장기 임대차 활성화를 위해 ‘농지법’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의원들이 참석했다. 두 건의 법 개정안은 친환경 농업의 공익성을 인정하고, 임차농이 안정적으로 농지를 빌려 농사짓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불안정한 임차농의 현실을 개선하며, 지속가능한 농업을 도모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의원은 “친환경 농업은 저탄소, 탄소중립 사회로 가기 위한 길”이라며 “친환경 농민에게 예외적으로 농지를 임차할 수 있도록 농지법을 개정해 공익적 가치와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는 “친환경 농민들이 농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고, 도시민의 건강과 농민의 소득을 함께 지킬 수 있도록 입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은 “실제로 경작은 농민이 하고 있지만, 농민이 농지를 떠나야 하거나 친환경 인증을 포기하게 만드는 지금의 법을 반드시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은 “여러 농정의 현안이 많지만, 친환경 임차농의 현실을 보니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며 “새 정부에서 친환경 농가들이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실경작자의 현실, 친환경 농가 피해 특히 심각… 농지는 국민의 밥상을 지키는 기반
한국친환경농업협회 김상기 회장은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임차농이 친환경 농사를 지어도 인증 취소 위협을 받거나 직불금도 받지 못한 채 유령처럼 존재해야 하는 현실”이라며 “이대로라면 친환경 농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은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여주의 김동환 생산자는 “친환경 농업은 1~2년 만에 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토양을 가꾸며 짓는 농사인데, 농사를 지을 만하면 땅을 잃고야 만다”며 “귀농을 꿈꾸던 사람들도 이런 현실에 부딪혀 포기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임차농들은 10년 넘게 토양을 일궈도 지주의 사정으로 임대가 중단되면 계획된 농사마저 무너진다”며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환경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충남 서산의 전량배 생산자는 “현행 제도가 농민과 지주 모두를 범법자로 만든다”며 “농지를 소유한 사람은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민 행세를 하고, 정작 농사를 짓는 임차농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농민과 지주 모두가 법을 지키면서도 지속가능한 농업을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소비자 대표로 나선 한살림동서울생협 강말숙 이사장은 “임차농을 법과 제도 밖의 존재로 만드는 것은 농민의 삶을 부정하는 일”이라며 “농사를 지을 땅을 잃고 유령처럼 내몰리는 현실은 결국 농업의 기반을 무너뜨려 소비자도 밥상을 지킬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만든다”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농지와 농부를 지켜내는 일이 곧 우리의 밥상과 자연, 생명을 지키는 일이기에 소비자 단체도 지속해서 목소리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농지를 농부에게… 경자유전 실현과 실경작자 보호 대책 촉구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지완선 회장은 “농지를 경작하고 있지만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한 임차농이 법과 제도 속에서 지워지고 있다”며 “정부가 현실을 외면한 채 제도를 방치하고 있어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신지연 사무총장은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취지를 현실에 맞게 구현하고, 국가 식량안보를 위해서라도 실경작자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두레생협연합회 황홍순 회장은 “수십 년간 흙을 일구며 살아온 농민들의 노력이 유령처럼 사라지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책임을 미루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전국 각지의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작성한 메시지를 담은 ‘임차농 희망우체통’이 국회의원들에게 전달됐다. 참석자들은 이 뜨거운 여름날 모인 우리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국회와 정부가 임차농 보호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행동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한살림연합 소개
한살림은 ‘밥상살림·농업살림·지역살림·생명살림’ 가치를 내걸고 도시와 농촌이 더불어 사는 생명 세상을 지향하는 생활협동조합이다. 1986년 한살림농산으로 출발한 이후 꾸준히 생명살림운동을 실천해왔다. 전국 95만여 세대의 소비자 조합원과 2300여 세대의 생산자가 친환경 먹을거리를 직거래하고, 유기농지를 확대하며, 지구 생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온라인 장보기와 전국 235개 매장에서 유기농 쌀과 친환경 물품을 만날 수 있다.